2016년 12월 13일 10시 KTX열차를 타고 부산으로 향했다.
부산아줌마들이 배타고 가서 점심 먹고 온다는 대마도가 궁금해서~
재향과 서울역에서 만났다^^
부산역에서 내려 택시 타고 해운대 SC헬싱키호텔로 갔다.
입실 시간보다 일찍 도착했기에 짐을 맡기고 해운대 해변으로 고고~~
바람 불고 흐릿한 날씨 탓인지 사람들이 별로 없었다.
사진에서 신축 중인 건물이 요즘 특혜로 시끄러운 엘시티건물.
해변을 걷고 나서 점심으로 전복죽을 먹고
작년에 처음 걸었던 문텐로드로 향했다.
여전히 한적하고 경치 좋았다^^
동해남부선 기차길로 내려와서 청사포 주변을 둘러 보았는데
작년보다 정리된 모습이었다.
기찻길 옆에 있는 낡은 집 담벼락에 센스있는 그림도 그려놓고~
작년에 갔었던 이기대와 오륙도가 멀리 보인다.
마침 차를 돌려 나가는 빈택시를 타고 호텔로 돌아왔다.
체크인하는데 직원 아가씨가 방을 스위트룸으로 업그레이드해줬단다.
얼마나 고맙던지 ㅋㅋ
국제여객터미널 쪽에 숙소를 잡을 걸 하는 후회가 갑자기 사라졌다.
더군다나 파도가 높아서 아침 9:10 출발 배는 결항되었고
우린 12시 배로 출발한다고 문자가 왔다.
여유로워진 일정에 신나서 짐을 풀고 해운대역 주변으로 나갔다.
빛축제로 화려한 거리를 걸으며 맛집을 찾다가
손님이 제법 많은 꼼장어집으로 들어갔다.
꼼장어와 복분자를 먹고 기분 좋게 호텔로 돌아와
씻고 마음 편히 깊은 잠을 잤다.
다음날 아침,
작지만 깔끔한 식당에서 커피와 쥬스 & 샌드위치를 먹고
콜택시를 불러 여객터미널로 갔다.
터미널에 도착하니 함께 갈 가이드와 손님들이 모여 있었다.
가이드가 여권을 모아서 배표를 구입하고 점심 도시락을 나눠주었다.
파도가 세서 배가 [조건부]로 출발한단다.
[조건부]출발이란 파도가 높아 출항했지만 되돌아와도
운임비를 돌려주지 않는다란 뜻이라며
여행을 취소할 사람은 취소해도 된다고 했지만
모두들 포기하지 않고 배를 타기로 했다.
멀미가 살짝 염려되긴 했지만 약은 먹지않았다.
출국 수속을 마치고 면세점에서 쇼핑을 한 후
드디어 배에 승선했다.
배를 타고 출국하는 것이 처음이라 과정이 신기했는데
짐을 부치지 않아서 그런지
비행기보다 과정이 훨씬 수월했다.
400명이 타는 배에 87명만 탔으니
마음에 드는 자리에 앉아 가도 된단다.
파도가 높으니 안전에 주의하라는 안내방송에 신경써서 그런지
속이 울렁거리고 긴장되었지만 잘 참고 견뎌냈다.
평소보다 15분쯤 늦게 히타카츠에 도착했단다.
히타카츠항구 주차장에서 기다리던 버스를 타고
관광을 시작했다.
러시아와 전쟁 당시 대마도에 낙오된 병사들을 대마도 사람들이 치료해주고
되돌아 갈 수 있게 배려해줬다는 이야기를 들으며...
작지만 아름다운 미우다해수욕장
한국아줌마가 파는 믹스커피도 한 잔했다.
미우라해변을 뒤로 하고 하대마도로 내려왔다.
대마도에는 나무가 아주 많았다.
특히 삼나무와 편백나무가 많았는데
대마도의 모든 나무를 베어서 팔면
일본 전체 인구가 4년간 먹고 살 수 있을 정도의 가치가 있단다.
이즈하라 시내 공사하는 곳에서
얀마굴삭기를 보고 반가워 한 컷 찍어서 아들에게 보냈다^^
대마도는 산과 바다가 접해 있는 형상이라서
농사지을 땅이 없단다.
그래서 세종 때, 대마도를 정벌했으나
비용이 너무 많이 들어간다고 관리를 포기했다고 한다.
문 닫기 전에 급하게 대마민속역사자료관을 둘러봤다.
1697~1811년, 12회에 걸쳐 일본을 방문해서 문화를 전파한 조선통신사를 기리기 위해 세워진 비
대마도에 있는 동백꽃은 잎이 작고 꽃이 크다고 함
대마도 영주 소 다케유키와 덕혜옹주와의 결혼을 축하하기 위해 대마도민들이 세웠던 결혼기념 봉축비
한 많은 덕혜옹주가 생각나서 그런지 왠지 쓸쓸해 보였다.
저녁 먹을 시간이 다되어 시내 식당으로 갔다.
해산물과 고기를 구어 먹었는데
깔끔하고 맛도 괜찮았다.
28명인 우리 멤버들은 두 군데 숙소로 나뉘어 잠을 자게 되었는데
우린 대마호텔에 배정되었다.
호텔이라는 이름이 무색할만큼
시설이 낡아 실망스러웠지만
시내에 있어서 쇼핑하기 편했고
조식에 나온 고등어가 신선하고 맛있었다.
다음 날
이즈하라는 아주 작은 도시여서 시내에 있는 유적지를 걸어서 돌아봤다.
하치만신궁은 대마도 대표 신사로최익현 선생이 대마도로 끌려와 처음 3개월간 수용생활을 했던 곳이란다.
신사 건너편 마을로 발걸음을 옮겼다.
방화벽(에도시대에 만들어진 돌담) 앞에서 한 컷
다시 대마도에 온다면
이런 작은 민박에서 묵으며 여유 있게 거리를 걷고 싶다.
나카라이토스이의 생가로 기념관, 문화관으로 개방되고 있다.
나카라이토스이는 일본에 우리나라 춘향전을
처음으로 번역해 알린 문학가란다.
대마도의 부유한 집 형태를 볼 수 있다.
민물이 아니라 바닷물, 굳이 배수로를 왜 만들었나 했더니
지진 났을 때 방화용수를 확보하기 위함이란다.
조선통신사를 기리기 위해 벽화도 만들고......
임진왜란 후, 도쿠가와막부는 국교회복을 위해
조선에 통신사의 파견을 요청하였고
조선조정에서는 일본의 의향을 받아들여
사절단을 파견했단다.
사절단 이름을 조선통신사라 했고
약 400~500명으로 구성된 사절단은
한양을 출발하여 부산을 경유,
쓰시마에 상륙한 뒤
다시 세토나이카이를 거쳐
에도에 도착하였다고 한다.
그 화려한 행렬을 그린
16.58m에 이르는 두루마리 형태의 그림이
이즈하라의 쓰시마 역사민속자료관에 소장되어 있는데
시내 수로에 그 그림의 일부를 표현해 놓은 것이란다.
벽화에 등장하는 대마도 사람들의 형색이 말이 아니다.
일본은 지진에 대비하기 위해 실생활에서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유리창이 깨졌을 때를 대비하여 커튼 치기,이웃 베란다 칸막이를 쉽게 제거될 수 있도록 설치,비상시 불을 끄기 위한 도랑길 물 준비 등)
다음은 최익현 선생의 유해를 잠시 안치해두었다는 수선사 (백제 출신 비구니 법묘스님이 창건)로 향했다.
독립을 주장하며 순국한 최익현 선생을 기리는 순국비
구국 항일토쟁의 상징인 최익현선생님은
쓰시마에 유배되어 일체 식사를 거부하다
돌아가시자 수선사에서 장례를 치룬 뒤,
유해를 부산으로 이송하였는데
선생의 넋을 기라고자
1986년 한일 양국의 유지들이 뜻을 모아
수선사에 비를 세웠단다.
수선사 내부
턱받이를 한 불상은 아기들의 영혼을 기리기 위한 불상이란다.
다시 하타카즈로 돌아가며
상대마와 하대마를 잇는 만관교를 지났다.
와타즈미 신사 :
대마도의 대표적 신사로 바다의 신을 모시는 곳으로
대마도는 부산에서 45Km정도 떨어진 섬이어서
맑은 날엔 한국전망대에서 부산이 훤히 보인다고 한다.
일본 출국, 부산항에서의 입국 절차는 매우 간편하였다.
부산역에서 열차를 기다리며
삼진어묵을 사고 커피를 마셨다.
KTX를 타니 안락해서 마음이 편했다.
서울역에 내려서 인천공항철도로 김포공항역까지 오니
원영아빠가 3번출구로 마중나와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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